다니엘 1장 1절-7절
예루살렘이 멸망하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를 점령하고 싶었다.
이미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약해질대로 약해진 나라를 호시탐탐 노렸다.
여호야김 3년에 느브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에워쌌다.
유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엘리야를 보내 주시고, 엘리사를 보내 주신 하나님께서 누군가 선지자를 세워주실 것을 굳건하게 믿었을 수 있다.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나를 돌봐 주실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기 위해서 우리 삶을 바꾸신다.
어떤 사람은 그 삶을 완전히 무너뜨리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의 구원사역의 완성을 위하여 우리가 고난을 받도록 허용하신다.
유다가 힘들 때마다 선지자를 부르셔서 사용하시던 하나님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느브갓네살이 유다를 치도록 허하셨던 것이다.
우리 삶 속에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면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물이 있는 예루살렘에만 있으면 자신들이 안전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리 그들이 약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적을 이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느브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성전과 성물을 자신의 나라에 가져가는 것을 당시 유다인들은 볼 수밖에 없었다.
왜 하나님이 이들을 이 상태로 두셨을까?
형식적인 예배가 느끼하셨던 주님
당시 유다인들은 예배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예배를 대충 드리고 다른 쾌락을 즐기고 싶었다.
어떤 이들은 예배는 조금 돈벌기는 많이
어떤 이들은 예배는 조금 정치 세력을 내 수하로 두는 것에는 열심을 내고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을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장소를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로 잘 쓰게 하셨고,
주님께 충성하게 하셨다.
그런데,
지금 우리 모두 정말 그런가?
우리는 짧은 예배 후 우리가 하고 싶은 뭔가를 향해 간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드는 것보다는
졸거나 딴 생각하기 바쁘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냥 멈춰 버렸다.
당시 유다인의 예배도 비슷했던 것 같다.
세계 유일 성전이 있었으나, 세계에서 가장 좋은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형식에 얽매여 하나님이 없는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회초리는 돌이킬 기회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통해 성장하기를 고대하신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삶은 차츰 변화될 것이다.
주님의 뜻대로 살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 진다.
하나님이 그 길에서 멀어지는 사람을 돌이키신다.
회초리를 들어 그 사람을 위로하시고 돌이키게 하신다.
하나님이 도우신다.
그 돕는 과정이 하나님이 돌이키게 하시는 회초리다.
우리의 삶이 막힐 때 그때가 기도해야 할 때
기복 신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복 신앙의 기반은 하나님이 삼라만상을 주관하시고 그 주관자에게 내 삶의 주도권도 의탁한다는 기본 베이스가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그를 기쁘게 하는 이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삶이 막힐 때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갑자기 병에 걸려 흔들릴 때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뭔가를 찾아야 한다.
주님이 주시는 기회다.
기도할 수 있는 기회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시길 바라신다.
살아계셔서 대화하시기를 즐기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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