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편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말씀 나눔 묵상

시편 133편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믿음 성공 2022. 10. 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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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한다.

형제가 같이 있는 것이 선하다고 한다.

그런데, 형제는 누구고! 왜 잘 지내기 어려운가?

사는 데 있어서 가족보다 힘들고 어려운 존재가 있을까?

형제와 같이 지내는 것이 좋을까?

친한 형제와 함께 있으면 정말 좋은가?

사실상 그렇지 않다.

인간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만 어느정도 멀어야 도움이 된다.

좀 떨어져야 그 사람이 좋아 보이지 가까이 있으면 별로 도움 안된다.

 

 

 

 

 

형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가까웠던 사람이 있었다.

두 남자는 교회에서 친했다.

봉사도 같이 하고 

비슷한 전공이어서 좋은 생각을 많이 보내고 받았다.

형제 덕분에 자신의 삶이 좀 더 좋아진 적이 있었다. 

투자에 도움도 됐다.

사람이 착해서 만나기도 좋았다.

그런데 삶이 점점 어려워지는 타이밍이 갑자기 돌아왔다.

형님이었던 이는 그 어려운 중에 어머니 말씀을 따라 살기로 했다.

그런데 아우였던 형제는 형님과 생각이 달랐다. 

목사님 보고 살자고 했다.

형은 동생과 생각을 같았지만, 같이 있기는 싫어졌다.

그런데, 결국 교회가 쪼개졌다.

목사파였던 동생은 목사와 함께 교회에서 쫓겨났다.

반면 어머니 말씀을 따랐던 형은 기존 교회에 남았다.

가깝지 않았으면 원수도 안되었을 것 같은데,

원수가 되어 버렸다.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개 있는 지까지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은 철철지 원수가 되었다.

형제는 동거할 수 없게 되었다.

주의 은혜로 이 둘이 다시 보게 될 방법은 뭐가 있을까?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져서 또는 한 사람의 몸이 망가져서 어쩔 수 없이 형님이 또는 동생이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여러 간증 집회에서나 나올법한 스토리를 체험해야 좋은 관계로 돌아가는 걸까?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방법

우리는 답을 사실 알고 있다.

내가 살면 성령의 충만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죽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 때 대부분 그 일이 별거가 아닌 경우가 많다.

내가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나를 감당하지 못해서 힘든 경우가 많다.

내가 정말 부족하고 정말 보잘것 없지만, 

누구도 내가 그렇게 취급받는 것을 싫어한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을 지나 보내야 형제와 동거할 수 있다.

형제가 잘못할 지라도 

그 심판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방법이다.

이전 것이 내게 있었을 때 지나 보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면,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과 내가 먼 것이다.

 

 

 

안될 때는 잠깐 멈추자

그분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그분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런 것이다.

그분 뜻이 아니면 멈추는 것이다.

원수같은 형제와 함께 있기 어렵다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같이 있어 괴롭다면, 떨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현명하다.

안되는 데 되게 하려다 

사울 같은 삶을 살게 될 것 이다.

사울은 지옥같은 삶을 살다 갔다.

그가 다윗이 미워도 조금 떨어져 살아 보자고 했다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삶은 주님이 주관하시는 것이다.

그저 내가 최선 다하고 열심히 하면 해결되는 곳이 아니다.

인생 에서 내가 못하면 잠시 쉬자. 잠시 머물러 서있자.

그 후에 뭐든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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